[NI인터뷰] 전종서 “‘버닝’, 다시 찾아 올 수 없는 혹은 그랬으면 하는”
[NI인터뷰] 전종서 “‘버닝’, 다시 찾아 올 수 없는 혹은 그랬으면 하는”
  • 승인 2018.06.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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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버닝’을 생각하면 슬플 것 같아요. 다시 찾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데뷔작으로 거장의 작품에 주연을 맡아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25살의 전종서는 모든 배우들의 꿈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 체감을 할 수도 정면으로 마주하기도 어렵다. ‘버닝’(감독 이창동)의 해미가 그랬듯 전종서는 헝거가 되어 의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해미에 관해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작업의 기초였고 숙제라고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해미의 외로움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런 아이가 어딘가에 정말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죠. 해미뿐만 아니라 종수와 벤도 그랬어요. 정도 많이 갔고요. 각자의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이 있었어요.”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고, 그녀에게 벤(스티븐 연 분)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종서는 해미가 지닌 외로움과 결핍, 해방에 정서적으로 공감했다. 이창동 감독은 촬영에 앞서 수차례 미팅을 진행하며 지금의 전종서가 존재하기까지의 과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냈다. 카메라 밖의 전종서와 시나리오 속 해미는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스크린 안에서 공명했다. 

“해미에게 공감이 갔어요. 어떠한 외로움이 있고 결핍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걸로 해방되고 싶은지 완벽하겐 아니어도 정서적으로 공감을 한 것 같아요. 오디션과 미팅을 진행하면서 제가 어떻게 살아왔고 저의 현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지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가족관계나 주변 환경은 어떤지 많이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많이 풀어두셨어요. 행동이나 말에 제약이 있던 순간이 없었어요. 하고 싶은 대로 했고 해맬 때는 순간순간 질문을 했죠.”

   
 

영화 속 세 인물은 결핍의 충족, 분노의 방출, 권태의 해소 등 각자의 방식으로 ‘버닝’한다. 그 과정 속에서 영화는 각 인물 혹은 관객에게 저마다의 질문을 던진다. 해답을 찾지 못한다 해도 그 질문 자체로 유효하다. 전종서는 “‘버닝’은 아이덴티티를 묻는 영화다”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넸다.

“지금 시대를 바라보게끔 만든 영화 같아요.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풍경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 영화.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물음표를 던질 수 있게 만들었죠. 이유 없이 화나있고 분노했던, 그래서 느꼈던 무력감에 질문을 갖게 했어요. 저에게도 그런 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던 것 같아요. 때로는 슈퍼에서 콜라를 살 때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친구를 만나면서 그런 적도 있고요. 일을 하는 과정이나 시작할 때도 그랬죠.”

영화를 좋아하고 즐기던 관객에서 직접 영화 속에 들어가 연기하는 배우가 됐다. 아직 한 작품이지만 영화를 보는 것과 찍는 것의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저는 영화에 합류하기 전까진 관객의 입장으로 영화를 봤어요. 관객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보는 건 배우의 연기잖아요. 배우가 연기하는 한 장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지 느꼈어요. 배우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 감독님, 음악 감독님, 분장팀, 의상팀 모두가 연기한 거고 만든 거죠. ‘정말 단면만 본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첫 작품에서 배우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싶은 감독과 작품에 주연으로 호흡했다. 전종서는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직업을 넘어 사람으로서 존경을 느끼고 영향 받았다. 

“왜 그렇게 인정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들은 뛰어난 배우고 감독이라는 걸 넘어서 너무나 대단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 기준은 없지만 그렇게 느껴졌고 그래서 멋있었어요. 저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죠. 그만큼 무언가의 그 이상을 추구하는 분들과 함께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많이 배웠고 앞으로 더 많이 배울 것 같아요. 그분들이 있어서 행복했어요. 굳이 ‘버닝’이 아닌 어디선가 만났어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아요. 올바른 게 어떤 건지, 올바름에 가까운 게 어떤 건지 배웠어요. 건강한 가치관과 시야에 근접한 표본이 되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게 의미 있어요.”

데뷔는 다소 갑작스러웠지만 어릴 때부터 전종서는 배우를 꿈꿨다. 정확한 계기나 시기는 정할 수 없지만 매일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다. 이제는 이전과는 다른 자세와 눈으로 영화를 대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직 스스로 ‘배우’라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앞으로 방향 역시 예측할 수 없다. 전종서는 앞으로의 여정에 방향키를 두는 것보다 어디로 향해가든 담담하게 수용할 수 있는 배우이자 인간이기를 꿈꾼다.

“아직 방향성은 모르겠어요. 정한다고 정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고민은 할 수 있겠죠.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담담할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갑작스러울 것 같아요.”

   
 

짧은 시간 동안 전종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논란에도 휩싸였다. 작은 행동이 오해를 빚었고 비난에 혼란을 겪었다. 대중은 아직 전종서를 ‘버닝’과 매체를 통해 비춰지는 모습으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을 벗어난 전종서의 모습은 어떨까.

“저는 의리가 중요해요. 신중하고 호불호가 정확하죠. 인간 자체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에요. 말도 많이 안하는데 한번 터지만 끝도 없이 해요. A형인데 혈액형을 많이 믿어요. 여자 B형과 잘 맞는다는데 제 주변사람들이 B형이에요. 시간이 나면 곰처럼 집에서 자고 나오지 않을 거예요. 집에 있는 날은 종일 안 나와요. 막상 또 나가면 안 들어오고 사람들이랑 즐겁게 놀아요. 중간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전종서는 스스로 인간 자체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녀는 다양한 톤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신중한듯하다가 무심하고 유쾌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을 관찰했다.

“책을 좋아해요. 어릴 때는 좀 더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저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즐거워요. 대화를 한다는 건 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건데 여행과 닮아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세계가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요. 외향적인 모습이 주는 느낌도 있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아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다양한 생각을 만들고 키우는데 있어 물을 주는 게 책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책보다는 영화를 더 선호하고요. 한때는 심리학이나 철학 서적을 읽으면서 정답을 찾으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정답이 없다는 걸 느낀 것 같아요. 괜히 해석하려고 하니까 머리만 터지는 것 같고 저를 가두는 것 같았어요.”

‘버닝’을 통해 무거운 첫 걸음을 뗐다. 그녀에게 ‘버닝’은 작품이상의 존재가 됐고, 다시는 찾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애틋함이 서렸다. 모든 홍보 일정을 마친 그녀는 집에서 실컷 잠을 자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배우로서 여정도 이제 진짜 시작이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CGV아트하우스]